쏘쏘원의 영화 이야기
한국 최초의 영화와 영화관 본문
한국 최초의 영화와 영화관
한국에서도 영화가 수입되었는데 이때 상영한 것은 수입 영화입니다. 한국에서 만든 영화가 상영하지 않은 것은 아쉬운 일이지만 이것을 시작으로 한국 영화가 많은 발전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한국 최초의 영화와 영화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한국 최초의 영화
영화가 우리나라로 건너와서 상영된 시기에는 몇 가지 이론들이 있습니다. 안종화는 우리나라에 처음 영화가 등장하게 된 것은 1905년이었다고 말하면서 활동사진이라고 불렸던 이 문명이 영미 연초 회사에서 연초를 판매하기 위한 선전을 위해 제작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1943년 조선영상문화연구소에서 발간한 책에서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영화가 등장한 것은 1903년이라고 표시되어 있습니다.
1903년 6월에 발간된 황성신문에서는 동대문 내 전기회사가 기계창에서 하는 활동사진은 하오 8시부터 10시까지 하는데 이에 대한 각국의 도시, 각종 극장의 광경이 구비하 외라는 기사가 실려있습니다. 이것을 보면 1905년이라고 주장하는 안종화의 의견은 틀렸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광고 내용만 봐도 외국에서 건너온 영화뿐만 아니라 국내에서 만든 영화도 함께 상영했던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한국 최초로 영화를 상영한 시기는 1903년보다도 더 이전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안종화도 독일 여성이 경영하고 있는 손탁호텔에서 상영한 적이 있다고 기록하고 있어서 영화는 일반인들에게 본격적으로 공개되기 전에 이미 높은 사람들에게 공개되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또한 조광 1938년 4월호에 실린 활동사진 변사 좌담회 기록을 보면 처음 들어온 것은 3십7,8년쯤 되었을 것이라고 나타나 있습니다. 이를 보면 영화 상영 광고가 난 1903년보다 더 앞서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영화관의 등장
처음 우리나라에 영화가 들어왔을 때에는 앞에서 움직이는 사진으로 많은 관심을 일으켰습니다. 하지만 아직 흥행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어서 완전하게 정착했다고 보기에는 어려웠습니다. 1906년 한미 전기회사가 동대문 안에 활동사진 관람 소를 만들게 되는데 이는 전차를 타는 사람들을 더 늘리기 위해 해설까지 해서 초기에 나온 미국 영화를 자주 상영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를 영화관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어서 광무대와 단성사, 장안사, 연흥사 등이 상설 영화관으로 새롭게 등장합니다. 주로 일본인들을 상대로 해서 경성좌, 개성좌, 어성좌, 고등 연예관, 대정관, 황금연 예관 등이 오픈하면서 본격적으로 무성영화를 수입하게 됩니다. 이렇게 수입한 무성영화는 큰 흥행을 하게 되면서 영화를 해설해주는 변사가 등장합니다. 하지만 이 시기에는 우리가 직접 만든 영화는 없어서 그 점은 아쉬운 부분입니다.
우리나라 영화의 시작이 우리의 순수 자본이 아니라는 점은 정말 아쉽습니다. 하지만 이를 시작으로 해서 우리나라 영화관이 큰 발전을 하고 현재 멀티플렉스로 자리 잡게 된 것은 정말 큰 성과라 할 수 있습니다.